김상봉의 '도덕교육의 파시즘' 밑줄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 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 13쪽

유감스런 일이지만 현재 쓰이고 있는 도덕 교과서를 보면, 정치적 영역에서 독재자들이 물러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내린 노예도덕의 뿌리는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도덕 교과서의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우리는 그것을 주저없이 노예도덕과 파시즘이라 표현할 수 있다. - 29쪽

도덕이란 무엇인가? 소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악을 멀리하고선을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이다. 그런데 악은 자기로부터 타인에게 행해질 수도 있지만 거꾸로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나에게로 가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내가 타인에게 행할 수 있는 악을 멀리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 만큼, 마찬가지로 타인이나 사회가 나에게 가하는 악에 저항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도덕적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도덕교과서는 자기가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저항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 36~37쪽

만약 도덕교육이 악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인간을 기르려 한다면, 하급자의 예절을 강조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상급자의 폭력에 대한 저항 역시 마땅한 도덕적 의무로서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회적 악은 피해자들의 방관과 침묵 및 굴종 속에서 독버섯처럼 창궐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를 진정으로 도덕적이 사회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원한다면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양보와 희생을 가르치는 것만큼 타인이나 국가가 자기에게 가하는 불의에 대해 용기 있게 저항하는 것을 자유로운 인간의 마땅한 의무로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희생과 봉사의 도덕을 가르친다면서 학생들을 양순하지만 비겁하고 비굴할 노예들로 기를 뿐, 자기를 지키고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 있고 당당한 자유인으로 기르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 39쪽

도덕은 국가나 민족의 테두리 안에 갇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정당성은 오직 도덕의 보편성을 통해서만 검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에서 도덕교과는 반공도덕 또는 국민윤리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런 것들은 불가능한 조합이다. 도덕은 국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반공과 동일시될 수도 없다.반공은 보편적 도덕의 원칙이 아니라 하나의 당파성의 원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윤리는 국민의 윤리였고, 반공도덕이었다. 그렇게 국민과 반공이 도덕교육의 원리가 될 때, 도덕교육은 참된 도덕이 아니라 한갓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전략하기 위한 것이다. - 72~73쪽 

...이런 엄연한 현실은 이 땅에서 근대적인 교육철학이 주체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사회가 파시즘적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의해 조직되는 사회에서 학교만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학교는 병영(兵營)이다. 강제된 운명에 따라 병영이 되어버린 학교에서, 학교란 무엇인가 또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이다. 학교교육이란병영의 모범에 따라 학생들을 획일적 질서에 순응하게 통제하고 위로부터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길들이는 일 외에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런 곳에서 교육은 본질적으로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형성으로서의 훈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학생들의 자유와 자발성을 교육과정 속에서 어떻게 담보하고 또 실현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처음부터 들어설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149쪽 

도덕교육이 넓은 의미의 철학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신이 노예상태에 빠지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편협한 당파성에 빠지지 않고 모든 문제를 균형 잡힌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현실을 절대화시키지 않고 완전성의 이념 아래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203쪽


by 라피르 | 2008/12/02 01:14 | 책읽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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