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자각몽에 대한 몇가지 단상과 꿈에서 그녀 찾기 사랑의 단상

밑에 새벽에 뻘글로 꿈을 꾼걸 남겨서 생각난 주제.

이 글을 쓰기 전에 몇번이고 집에 있는 신경과학자들이 수면에 다뤘던 부분이나 수면이나 꿈 자체를 연구한 과학자들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려고 하면서 미뤘었는데(다 쓰고 나니 뻘글이 많았지만, 원래 이 글은 짧게 제목에서 말하는 두가지 주제를 짧게 쓰려고 했었음 근데 언제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계속 딴대로 새면서 길게 써짐 ㅡㅡ;;) ㅅㅂ 귀찮아... 그냥 내 경험 쓰겠다는데 왜 그런 과학적 자료를 찾아서 설명해야하는지.
존내 이상한 병인듯.

1. 자각몽自覺夢 혹은 Lucid Dream.

가끔씩 도서 할인 정보나 사진 인증하려고 가는 디시의 도서갤러리와 아는 블로거분이 자각몽을 꿨다는걸 좀 특별하게 말하던데(근데 진지한건 아니고 장난인거 같음... 어쨌든!)

자각몽Lucid Dream 은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꿈을 꾸는 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꿈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보통의 꿈은, 꿈이 펼치는 기이한 세상에 던져진채 거기서 느끼는 그대로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깨고 나서야 그게 꿈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자각몽의 경우 꿈속에서 꿈이란걸 알아채고, 그 순간 단순한 일반적인 꿈처럼 꿈을 꾸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이나 생각에 휩쓸리지 않거나, 적어도 꿈이라는걸 알기에 그런 상황과 감정에 대해서 어떤식으로든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꿈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감각 상황에 대한 태도나, 꿈 자체를 자기 의도로 어느정도 바꿀 수 도 있고, 스스로의 의지로 이런저런 행위를 할 수 있지만. 꿈 전체를 신처럼 지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할 수는, 상식적으로도 가능할리가 없고 실제로 연구한 사람들의 말을 따르자면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꿈을 꾸는 걸 스스로 의식하면서 꾸는게 가능한 가 하는 실험을 여럿 소개한 뇌과학에 대한 책에서 한가지 실험 중 하나는 우리가 꿈을 꾸는 수면주기인 렘-수면의 경우 목아래로는 신체가 전부 마비된 것처럼 되지만, 안구운동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졌다. 그리고 실험자와 피실험자가 꿈인걸 자각했을때 어떤식으로 안구를 움직일건지 약속하고, 꿈을 꾸게 한뒤에 그런식의 안구신호를 피실험자가 보이면, 깨워서 물어보는 것인데. 대중적인 책이라 구체적으로 어떤식으로 실험을 설계했지는 등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도, 다만 자각몽이란게 착각이 아니라 흔한 경험중 하나라는게 그런 실험을 했던 몇몇 이름을 가진 과학자들의 성과라는 말만을 하고 넘어갔다.

2. 자각몽을 꾼 개인적 역사.

나 같은 경우는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자각몽을 자주 꿨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식의 꿈꾸기가 특별하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누군가 친구나 부모님에게 말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어느정도 선에서"는 할 수 있기에.기억하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때도 자각몽을 꿨던 기억이 나는데.

초등학교때 꾸던 자각몽은, 그나이때 아마 자주 꾸는 여러 종류의 악몽과 그에 대처하기 위한 온갖 방법. 혹은 RPG게임을 좋아해서 마법을 쓰고 싶어서 자주 날거나 마법을 쏘려고 했던 것등 이었음. 그때 특히 오락실에서 던전&드래곤즈2 라는 게임이 유행했는데, 아직까지도 인터넷방송국 보면 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매력있는 게임. 난 항상 마법사로 했는데. 꿈에서는 제일 약한 마법인 매직 미사일 밖에 못쏜거 같음 ㅡㅡ;;

그 나이대에 가장 많이 꾸던 악몽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런데 자각해봤자 어쨌든 우리 몸은 잠들어있고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다고 생각할 만큼 적절한 의식적인 성장이 안되어있을 테여서 그런지, 오히려 꿈을 의식한다는 게 더 괴로웠던 것 같다. "아 시발 꿈인걸 알아버렸는데, 깨기만 하면 되는데, 안깨지잖아" 하면서 동시에 "시간의식" 이란것을 느끼게 되어서 흔히 괴로운 경험은 빨리 지나가길 바라기에 더욱 시간이 더디게 가게 느끼듯, 꿈에서도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하거나, 도망다녀야 하지?" 이러고 있었다. 꿈을 바꾸거나, 피하려는 생각을 통한 의지도 거의 안먹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악몽의 경우 꿈속의 무서운 분위기와 상황에서 깨어나려고 눈을 질끈 감고, 실제 신체의 눈을 뜨거나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해서 일어난 적도 자주 있었던 것 같다.

또 자주 꾸던 꿈들은 그리고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나 물건들을 문방구에서 마구 갖고오기. 꿈에서라도 마구 사치부리고 싶었음...
이 경우 어느정도 미약하게 나마 의식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때가 있는데 일단 "처해진 상황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 못한다는 것" 이 자각몽이 시작되는 하나의 계기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그런식의 고민을 심각하게 하지 않고 꿈과 현실을 구분 할 수 있거든. 또 하나는, "죄의식" 과 관련된 건데, 내가 어떤 물건을 마구 훔치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게 들어서 하려고 하면, 바로 꿈이란걸 알 수 있다. 이 경우도 현실에서는 죄의식 때문에 그런건 거의 억압된 채로 표현될 뿐이고 그런 욕구가 드는 순간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는데 꿈에서는 의식이나 여러가지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배제된 채로 진행되는 것 같다. 쨌든 죄의식이 구체적으로 들었는데도, 하고 싶어져.. 그리고 해도 될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이러면 이게 꿈이구나 하면서, 꿈속에 던져져서 꿈을 꾸었을 때 느끼는 죄의식 따위는 던져버리고 마구 갖고 싶은걸 집어가는 거다.


그리고 사춘기 때로 지나가서, 몸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이성에 대한 관심의 급격한 변화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자각몽은 성적인 꿈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성적인 아무런 것도 없는데 찾을 수 없는 꿈인데. 그냥 자각몽을 꾸고 싶다고(정확하게 말하면 내멋대로 꿈속에서 욕망을 분출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이유없이 자각몽이 꿔졌다. 정말 매일 꾸다 싶이 했던때는 꿈만 꾸면, "이거 꿈인가?" 라는 아무런 상황에 처해있지도 않은데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어릴적부터 자각몽 경험이 많았기에, 일단 꿈인지 질문하기 시작하면 뭔가 의심스러운거다. 현실에서 좀처럼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사람은 심각한 현실과 환각체험을 구분하기 힘든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없기에 그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인 죄의식 체크. 내가 하고 싶은 행위에 대해서 죄의식이 느껴지기는 한데, 전혀 현실적인 수준으로 안느껴진다. 그러면 꿈이란걸 자각하고, 주위의 모습이나 상황등을 현실의식을 갖고 되돌아보면 마구 비현실적인 것들이 느껴진다. 외부적인 상황 자체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는 감각 자체도 어딘가 어긋나있다. 그렇게 그당시 꿈인걸 자각하면, 갑자기 꿈이 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여자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이동한뒤에, 여자들과 마구... 통성명 하고 친하게 대화하고 막 그러는거? 친구하자고 하고 막. 편지 주고 받고. 뭐 그런꿈?이 대부분. ㅋㅋㅋ

사춘기 이후로는 그다지 특별한 경향에 치우쳐서 자각몽을 꾼 경우는 없다. 이틀전에 인가 꿈을 꾼 경우는, 시골에 가족끼리 놀러가면서 차를 타고 멀리 가는데, 갑자기 도로 한편에 있는 그야말로 꿈이니까 가능한 현실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되는 어이없는 곳에 혼자 이유도 없고, 단계도 없이 갇혀버려서 무지하게 난감함을 느꼈는데. 그 상황 자체가 말해주는 여러 비현실성이 꿈이라는 걸 알게 해주더라. 그리고는 마치 꿈을 지배하려고 하듯이, 이 장면이 바꿔서 다른 장면으로 간다거나, 역시 이유도 단계도 없이 갇혔으니까 빠져나갈떄로 이유도 근거도 없이 빠져나갈거라고 생각해버리고 그 갇혀있던 상황에서 벗어난 꿈을 꿈.

3. 헤어진 그녀를 꿈속에서 그녀를 찾기

"흔히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다" 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특히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 할때, 도저히 현실적으로는 지각할 수 없기에 꿈에서 보고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인데.

한참 차이고서, 또 다시 자각몽의 시대가 되었다. 일단 기억하는 꿈의 대부분은 꿨다하면 이유도 없이 그냥 꿈이라는게 의식되었고, 그 뒤부터는 내용이 거의 비슷한 주제의 수많은 변주들.

그녀가 있을거라고 생각되는 장소를 마구 찾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묻는등 해서 그녀를 찾는 것이다. 내 경우 대부분 고등학교 이하의 학교(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녀를 처음 만난게 학교라서 그런것 같다) 교실에 그녀가 다른 반이 되어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 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무조건 꿈속에서 그녀가 있을 학교로 달려가서, 쉬는 시간까지 기다리고 그냥 멀리서만 지켜보기만 했다. 꿈에서 조차, 게다가 단순히 내 뇌가 만들어낸 꿈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다가기 힘들더라. 말을 걸기도 그렇고. 하지만 그냥 멀리서, 혹은 조금 가까이서 단순히 얼굴만을 보고 나서 꿈에서 깨게 되면 정말 아무런 내용도 없는 꿈속에서 그녀를 찾다가, 찾아놓고는 멀리서만 바라보는 꿈인데도 매우 기뻐서 그날은 매우 행복한 날이 되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도 왠지 가까이 다가가면 싫어하게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젖어있었었다. 왠지 무작정 가까이 귀찮아하고, 싫어하고 그런말을 들으면 상처받을까봐 그냥 교실 밖 복도에서 창문으로 보거나, 문을 열어서 다른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듯. 꿈이란걸 알고, 멋대로 해도 됨에도 오히려 꿈이란걸 알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생각이 더 강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꿔지는 꿈이었다면,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다양한 관계로 만났을 수도 있었겠지??

무지 로맨틱 하지 않음? 현실과 꿈에서 동시에 스토킹하기. 스스로 자뻑......;;
이런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 그 당시에 자는건 시간이 되었으니 내일을 위해서 자는게 아니라 찌질하게 혼자 그녀생각하며 울다가 지쳐서 잠들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현실에서 찾는 것도 모자라서 꿈에서까지 찾으려고 해댄듯.

근데 언젠가 부터는 잠을 자고 일어나도 꿈을 기억하는 일도 별로 없고. 자각몽 자체도 꾸지 않게 되어버림ㅠㅠ

4. 자각몽을 잘 꾸는 사람과 꿈에 대한 단상.

- 자각몽에 대해서 그다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고. 단순히 내 경우, 어릴적이나 지금부터 모든 것을 따져묻는 습관이 베어있었기에 쉽게 꾸지 않았나 싶었다. 어릴적부터 난 의심쟁이에다가 불만쟁이었다. "이건 안돼" 라고 부모나 사회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었다.

우선 여러 개인적인 경우를 통해서 밝혔지만, 이런식의 사고를 자주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일 경우 꿈속에서 꿈인걸 자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 사회에서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행위, 범죄 같은 것을 하는 경우. 그냥 꿈에서는 그런 행위가 이유없이 하고 싶고, 죄책감이란 감정이 든다 해도 그게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일어나지 않거나 너무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기에 그냥 꿈속에 던져져서 꿈을 꾸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 도대체 그런 행위를 하고 싶어진다는 것 자체부터 이상하게 여기는 경우가 분명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길가에 보이는 수많은 여자들을 차례차례 강간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데 꿈에서는 그런게 가능하다. 그럼 보통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데, 사실 조금의 의심만 있으면 이 기이함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또 하나 어떤 책에서 읽은 경우, 통계적으로 공간을 지각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보통 사람보다 자연적으로(자각몽을 꾸기 위한 특정한 방법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꾸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 역시 공간 지각 능력이 어릴적부터 매우 탁월했음. 무슨 적성검사나 수십만원 들여서 대학병원등에서 받은 아이큐와 심리검사 세트에서 보면 다른건 다 떨어지는데 공간지각능력만 높음 -_-;;

그밖에 특정한 종류의 인지능력이나 뇌의 특정한 능력이 발달 한 사람이 잘 꾸게 되어있지만. 어떤 기억안나는 책에서 읽은 외국에 출처없는 대학생을 설문에서는 누구나 살면서 몇번쯤은 자각몽이라고 불리는 꿈을 꿨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밖에 꿈에 대해서 이것저것 쓰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필요이상으로 길게 써버렸다 -_-;;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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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방금 꿈에서 써니랑 키스하는 굼꿨음.. 경험과 기억

역사적인 날이라서 기록한다. 이런 꿈을 꿔본 적은 없었다.

제일 좋아했던(? ㅠㅠ) 소녀시대 맴버 써니. 왜? 귀엽잖아... 난 작고 예쁘고 귀여운게 좋아.

암튼, 꿈에서 같이 팀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퍼포먼스로 키스를 해야하는(하는 척 하는) 장면이 있는데. 써니가 진짜로 해버림. 근데 갑자기(하는 장면에서 부터) 써니가 한 유치원생으로 보이더니, 뭔가 섹슈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키스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특정한 사이에서만 하는게 아닌 아무랑 할 수 있는 그런 그런 입술만 닫는 뭔가가 되어버림. 그래서 단순히 "어린애랑"(난 소아성애자가 아니라서..) "입술만 맞닿았"을 뿐이라서(성인인 써니가 아니라) 난 완전 실망했는데, 유딩 써니는 막 좋아함.

몰까? ㅠㅠ

고전적 정신분석학인 프로이트의 꿈의해석 부터 다양한 무의식의 존재를 가정하는 정신역동학파를 읽어온 내가 분석해보자면.

일단 이순규씨 매우 불쾌할듯. 어떤 덕후새끼가 꿈에서 뽀뽀했다고 글까지 쳐 남기는거 보면. 연예인 된거에 대한 회의감을 마구 느끼면서 한숨쉬고 "걍 식고자라". 뭐 이런 기분? 일거 같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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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구들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한 여러 학생들을 보면서

최근에 여러 폭력적인 괴롭힘과 자살 사건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들.

몇주전에 라디오에서 한 소아청소년 전문 정신과전문의의 말을 들었는데.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는데 있어서 "체벌" 이라는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면 안된다 그 어떤 경우더라도" 라는 투의 이야기를 다양한 예와 설득력있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했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권위에 의한 복종, 강제가 너무 만연해 있기에 말안들면 패서라도 듣게 한다는게 상식이다. 무방비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를 통해서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부모를 통해서 타자와 관계하는 법을 배우고, 어떤 사태에 대해서 대응하는 법을 배우지.

그런데 사회자한테 그 의사가 어떤 질문을 했던거 같음. 실제로 그랬냐 안했냐가 중요하지 않음 그냥 내가 했다고 하지 모 기억력 좌절 ㅠㅠ 만약에 자신의 어린 아이가 사회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을때 어떻게 하겠냐? 무엇을 훔친다거나, 누군가를 때렸다거나 하는 식의. 참 다시 기억에 되돌아 왔는데, 그 정신과의사의 지인인 대학교수가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데 고민이라는 거임. 체벌을 해야 하는가 안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말이야.

그런 맥락에서 소아청소년을 전문으로 치료한 정신과의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가 이렇다고. 사실은 '체벌'은 그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중 하나로서 고려조차 되면 안된다는 말이었음.

우리나라는 육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도 너무 만연해 있음. 바로 '가정' 에서부터 말야.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자주 들었던 말이, "말대꾸한다" 는 말이었음. 난 비록 초딩, 중딩 이런 나이었음에도 가까운 부모가 아니라, 할머니나 친척들이라도 잘못한게 있으면 어린이한테 사과하고 설명해야한다고 생각했음. 그런데 우리 부모세대는 그런걸 죄악으로 여기더라. 부모가 아무리 잘못하고, 분명히 옳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그냥 어른이니까 이해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거였음. 거기에 대해서 말하면, "말대꾸" 이고, 반항하는 거고 불효인 거임. 또한 아이가 잘못했을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게 아니라, 무슨 동물을 가르치는 행동주의 요법처럼 육체적이든 정신적인 폭력을 가해서 그것에 대해서 피해게 하는 방법이었음. 근데 인간은 동물이 아니잖아? 아무리 인지능력이 부족한 아이한테도, 그 나이에 맞춰서 차근차근 설명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려줘야 한다는거 아님? 물론 폭력을 가하면 효과는 가장 빠르고 눈에 보이게 나타남. 반면에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아이가 깨닫고 가치관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오래걸리기도 하고 힘든 과정이긴 하지만 뭐가 옳은지는 구지 설명안해도 되잖아?

이런 문화가 과연 몇년만에 얼마나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이런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세상을 관계하는데 토대가 된다는 거지. 초중딩 애들이 서로 상대의 의견을 듣고 다른 생각이나 감정적으로 부딪히면 대화나 논리적인 논쟁부터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것, 나는 누구보다 위에 있고 너는 아래에 있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생각된다는 것, 사람이 어떤 계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강압적으로 강요하는건 그 어떤 의문을 품는 것도 잘못이라고 여기는 태도. 대화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게 아니라, 아주 간단하게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바꾸는 힘을 기반으로 한 강요, 폭력 등을 가르키는데 말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인에게 종교같은 것을 강요하는데, 심각한 문제의식을 안느끼고 그저 불편하고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볼 수 있음. 우리가 배워온 타인과 관계하고,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데 아주 어릴때부터 베어있는 습관이 그런 강요같은 폭력의 한 종류인데, 도대체 어떻게 바뀌겠음?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다큐에서 봤는데. 한국 사람들이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종교를 권하는(사실 강요한다고 해야하지, 왜냐하면 와서 보라는 것도 아니고 잡아놓고 자기 세계관인 종교를 꾸겨넣으려는 식이니까)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하나 같이 말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게 조금 불편할 뿐인, 그냥 상식이고 일상임. 누구나 한번이 아니라 몇번은 경험하 수 있는.

이런 문화가 바뀌기 전에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가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어느 문화건 폭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중 하나이기에 존재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와같이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벗어나서 단순히 서울대를 목표로 다니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좁은 범위의 사회에서 더 크고 복잡한 범위의 사회적인 관계속에서 서로 어떻게 관계하고 이해해야하는지 배워야하는 곳인 학교에서 폭력에 기반한 관계 방식이 상식으로 여겨진다는 것,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은 논리나 정당성 없이 강요할 수 있고 거기에 그냥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선생들의 태도도 상식이라는 것은 심각하게 비정상적인 사태가 아닌가 싶다.

어떤 현상이 가끔 일어나면 정상적이라고 그냥 우연하고 특정한 하나의 불행이고 사건이라고 이해해야함. 어느 나라의 어느 학교에서도 폭력 사건과 따돌림 힘의 논리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그저 순응하는 일은 있을 거임. 근데 그게 상식이라고 불러도 될만큼 만연하다고 하면 그건 병리적인 수준에서 접근해야하는 병적인 사태임. 그게 병이라면 병의 원인이 되는 "뿌리"부터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서 바꿔야 하지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것에 대해서 지적하고 비판한다거나 하는 수준으로는 병이 치료될 수 없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문화란게 쉽게 바뀔 수 없고, 또한 폭력적인 문화라고 떼어내서 지적했던 부분이 실제로는 과연 그것 하나만 떼어서 바꿀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도 있는 것 같음. 결국은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심오한 결론에 도달했음.

저는 사실 진지하게 학교폭력이나 우리사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미리 고민했던 여러 학자들의 논문이나 책을 읽은적이 없네요. ㅠㅠ 그래놓고 존내 진지하게 씀. 사실 그냥 라디오 사연듣고 든 단상을 남기려고 했는데. 이것도 병인듯... ㅋ 아참 김상봉 선생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이라는 책은 읽었네요. 그책 추천합니다. 마침 그때 빌려 읽으면서 인상 깊은 부분을 옮겨적기까지 했네요! 정말 문득 생각난거고 오래전에 특정한 관점에서 인상적인 걸 옮겨적은거라 위에서 말하던 것과 연관성이 있나 모르겠지만 어차피 방문자 별로 없잖아? ㅋㅋ;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 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 13쪽

유감스런 일이지만 현재 쓰이고 있는 도덕 교과서를 보면, 정치적 영역에서 독재자들이 물러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내린 노예도덕의 뿌리는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도덕 교과서의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우리는 그것을 주저없이 노예도덕과 파시즘이라 표현할 수 있다. - 29쪽

도덕이란 무엇인가? 소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악을 멀리하고선을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이다. 그런데 악은 자기로부터 타인에게 행해질 수도 있지만 거꾸로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나에게로 가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내가 타인에게 행할 수 있는 악을 멀리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 만큼, 마찬가지로 타인이나 사회가 나에게 가하는 악에 저항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도덕적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도덕교과서는 자기가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저항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 36~37쪽

만약 도덕교육이 악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인간을 기르려 한다면, 하급자의 예절을 강조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상급자의 폭력에 대한 저항 역시 마땅한 도덕적 의무로서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회적 악은 피해자들의 방관과 침묵 및 굴종 속에서 독버섯처럼 창궐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를 진정으로 도덕적이 사회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원한다면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양보와 희생을 가르치는 것만큼 타인이나 국가가 자기에게 가하는 불의에 대해 용기 있게 저항하는 것을 자유로운 인간의 마땅한 의무로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희생과 봉사의 도덕을 가르친다면서 학생들을 양순하지만 비겁하고 비굴할 노예들로 기를 뿐, 자기를 지키고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 있고 당당한 자유인으로 기르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 39쪽

도덕은 국가나 민족의 테두리 안에 갇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정당성은 오직 도덕의 보편성을 통해서만 검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에서 도덕교과는 반공도덕 또는 국민윤리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런 것들은 불가능한 조합이다. 도덕은 국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반공과 동일시될 수도 없다.반공은 보편적 도덕의 원칙이 아니라 하나의 당파성의 원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윤리는 국민의 윤리였고, 반공도덕이었다. 그렇게 국민과 반공이 도덕교육의 원리가 될 때, 도덕교육은 참된 도덕이 아니라 한갓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전략하기 위한 것이다. - 72~73쪽

...이런 엄연한 현실은 이 땅에서 근대적인 교육철학이 주체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사회가 파시즘적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의해 조직되는 사회에서 학교만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학교는 병영(兵營)이다. 강제된 운명에 따라 병영이 되어버린 학교에서, 학교란 무엇인가 또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이다. 학교교육이란병영의 모범에 따라 학생들을 획일적 질서에 순응하게 통제하고 위로부터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길들이는 일 외에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런 곳에서 교육은 본질적으로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형성으로서의 훈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학생들의 자유와 자발성을 교육과정 속에서 어떻게 담보하고 또 실현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처음부터 들어설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149쪽

도덕교육이 넓은 의미의 철학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신이 노예상태에 빠지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편협한 당파성에 빠지지 않고 모든 문제를 균형 잡힌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현실을 절대화시키지 않고 완전성의 이념 아래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203쪽

김상봉, "도덕교육의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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